그분들이 생각하는 4.3 사건 (7)



















































































배우자가 바람 피워도 관대한 나라
7 Comments
쪽본깽깽이거르고 04.05 22:41  
또 또 미군 악마 만들기 친일파 딱지 붙이기 시작한다 김일성을 수괴로 한 남로당 새끼들은 억울한 희생자요 친일파 미군정이 죄 없는 양민들을 괜히 학살? 본문에 나와있다시피 거의 본토에서 버림 받은 것이나 다름 없는 섬을 굳이 친일파와 미군정이 학살해서 얻는 게 뭐냐? 사건의 선후관계를 완전히 뒤엎어 버렸잖아 이건 마치 북한이 남침해서 국군과 UN군이 반격한 6.25 전쟁을 죄 없는 한민족 통일을 미군과 친일파가 방해한 사건으로 가르치던 주사파 새끼들이랑 뭐가 달라? 중공군이 임진왜란 때 도와준 것처럼 한민족을 위기에서 구했고 미제와 친일 앞잡이들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우리민족 정기를 무너뜨렸다던 그 새끼들
11 04.05 23:51  
영자가 또...
asdf 04.05 23:52  
포털에는 한국어할줄아는 ㅈ선족 짱깨들 드글드글하게 남의나라 선거에 그리 관심이 많나 내정간섭하고 여론선동하고 있고 ㅉㅉㅉ 백신/치료제 등으로 1년이후에 코로나가 종식될쯤 미/영/캐/프/독/호 등등등 중국에 등돌리고 공격할텐데 그때도 중국바지가랑이만 잡고잇으려나 시진핑 개ㅅ/ㄲ 애_미D진 CCP
31 04.05 23:57  
이 게시물 주제가 제주민은 빨갱이가 아니다(일부가 빨갱이다) 이거잖아 현정부가 역사 바로잡기 하는 근거이고 당연히 맞는 말인데 남자는 잠재적 가해자이다 무고죄는 검토하지 마라 일단 잡으면 직장에 통보하고 시작해라 아무렇지도 않게 씨부리는 문재인이가 할말은 아니지
ㅇㅇ 04.06 00:04  
광주고, 제주도고 처음 시작이 어떻게 되었는지 나는 모르겠지만. 분명 억울한 사람들이 엄청 많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작은범죄도 절차에 따라서 진행하는 시대에도 사건이 석연치 않게 흘러가는 경우가 종종 생기고, 소방관, 경찰, 성직자 같이 사회적으로 도덕성을 인정받는 집단에서도 사건사고가 끝이지 않는데 빨갱이 진압하라고 내려보낸 사람들이 무슨 절차를 따라서 빨갱이들만 잡아들였을 것이며, 죽여도 상관없었던 상황에서 브레이크없는 욕망과 폭력성이 무슨 짓까지 했겠나...
04.06 00:11  
빨갱이니 뭐니 그런거 아니더라도 이유는 후대에서나 혹은 말하기 좋은 사람들에게나 중요하지 무장봉기해서 독렵요구하면 누구라도 별수 없다... 막말로 지금 그렇게 하면 문재인대통령은 어떻게 할거같냐? 뭐 그럴일 없으니 꿈같은 소리 할거 같은데... 대한민국 국민중에 얼마나 그 꿈같은 소리에 동의할거 같냐?
ㅁㅁㅁ 04.06 00:21  
서북청년당 과거의 서북청년단은 월남한 청년단체가 대공투쟁의 능률적인 수행을 위해 조직한 우익청년운동단체로 북한 사회개혁 당시 월남한 이북 각 도별 청년단체가 1946년 11월 30일 서울에서 결성한 극우 반공단체이다. 정식 명칭은 ‘서북청년회’로 당시 식민지 시대의 경제적·정치적 기득권을 잃고 남하한 지주 집안 출신의 청년들이 주축이 돼 결성되었다. 서북청년단은 대한혁신청년회·함북청년회·북선청년회(北鮮靑年會)·황해도회청년부·양호단(養虎團)·평안청년회(平安靑年會) 등이 *1946년 11월 30일 서울기독교청년회(YMCA)에서 창단되었는데 * 경찰의 좌익 색출 업무를 돕는 등 좌우익의 충돌이 있을 때마다 우익 진영의 선봉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공산주의자라고 의심되는 자에게는 무조건적인 공격을 가하였으며 특히 미군정은 *제주도 4.3 항쟁에서 서북청년단의 이러한 성향을 이용, 미군정의 명령에 대항하는 지역에 이들을 파견하였다.* 미군정에 의해 민중들을 공격하는 하수인이 된 서북청년단은 갈취와 약탈, 폭행을 비롯해 무자비한 살상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47년 4월 지청천(池靑天)이 대동청년단(大同靑年團)을 조직하고 기존의 청년 단체들을 통합하자, 대동청년단 합류를 둘러싸고 서북청년회는 합동파와 합동반대파로 분열되었는데, 합동파는 1948년 9월 대동청년단에 통합되었다. 초기의 서북청년회가 김구(金九) 노선을 지지한 데 반해 당시 서북청년회의 합동반대 파는 문봉제(文鳳濟)를 위원장으로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고 이승만(李承晩) 노선을 따랐으며 1949년 12월 19일 대한청년단에 흡수 통합되었다.[5] -위키백과